결혼 20주년 기념 등산 (Ben Lemond Summit)

결혼 20주년 기념 등산 (Ben Lemond Summit)

2019-06-20 2 By Adam and Eve

이브의 기행문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등산을 할 때에도 개인의 인생철학과 가치가 그 여정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결혼, 가족, 건강, 심지어 목숨까지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이 없고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자각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자는 이브의 인생관. 반면 더 좋은 것과 더 큰 행복은 다른 곳에 있다고 믿으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담.

2019년 6월 우리는 결혼 20주년을 기념하여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에 있는 해발 1748 미터 높이의 벤 르몽드 정상 (Ben Lemond Summit)에 오르기로 했다. 약 2년 전 퀸스타운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왔을 때 이 산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정없이 얼굴을 갈기고 옷자락을 뒤흔드는 칼바람이 너무 매서워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아쉽게 벤 르몽드 쎄들 (Ben Lemond Saddle- 해발 1326미터)에서 발길을 되돌렸어야 했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왔건만 우리가 퀸스타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더니 밤새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우리는 뼛속까지 한기가 전해지는 겨울비를 맞으며 왕복 6-7시간 걸리는 산을 오르내릴 만큼 등산광은 아니기 때문에 산은 포기하고 시내에서 먹고 마시며 느긋하게 놀 생각으로 늦잠을 자다 뒤늦게 눈을 떴다. 그런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새 맑은 하늘에 배턴을 넘겨주어 청명한 아침 햇살이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와 산들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와~~~~!!!! 😍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날씨 운에 기뻐하며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후다닥 가방을 챙겨 벤 르몽드로 향했다.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겹겹이 펼쳐놓은 병풍처럼 서있는 겨울산은 여름에 보았던 산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나는 산을 오르며 숨이 턱턱 막힐듯한 절경을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휴대폰 카메라의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걸음을 멈춰 설 때마다 앞서가던 아담은 ‘정상에 올라가면 더 수려한 경치를 볼 수 있을 테니 빨리 올라가자’고 발길을 재촉했다. 나는 어느 한순간에 구름이 몰려와서 시야를 가리거나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현재 찬란한 햇살 아래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내 눈에 그리고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해 주변을 늘 맴돌고 있는 구름을 가리키며 아담에게 ‘잠시 후에는 못 볼 수도 있으니 잠깐이라도 발길을 멈추고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라”라고 몇 번을 권유했다. 그러나 아담은 “해가 넘어가면 눈이 얼어붙어 가파른 길을 내려오는 것이 무척 위험하게 될 테니 빨리 올라가자”라고 여전히 나를 재촉하며 열심히 전진을 계속했다. 사실 정상까지 이르는 마지막 1시간 거리의 등산로는 경사가 심한 데다 쌓인 눈이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밑에서 꼭꼭 다져지고 얼어붙어 비누처럼 미끄러운 상태였다.

길 옆으로 자라는 풀을 머리채 잡듯 쥐어 잡고 미끌미끌한 얼음 위를 걷고 기어 마침내 우리는 정상에 도달했다. 와~~~ 😮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길죽길죽한 다리로 성큼성큼 우리를 앞서가던 한 청년은 먼저 도착하여 명상하듯 바위 위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다른 등산객들은 이미 모두 하산해 버린 상태라 세 평 남짓한 벤 르몽드 정상에는 유일하게 우리 셋뿐이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가수를 꿈꾸는 이 청년은 경치에 취했는지 거의 환각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노래를 불러달라면 노래를 불러주고 사진을 찍어 달라면 사진을 찍어주고 원하는 대로 말도 잘 들었다. 그런 후 그는 추위에 입도 손도 너무 얼어서 이제 내려가야겠다며 다시 성큼성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청년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아담은 바로 옆에 서있던 나를 품에 안으며 ‘Happy Anniversary!!”라고 말하고 내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우리 둘만의 완벽한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까 그 독일 청년이 분위기를 망쳤다며 그를 원망했다. 그리고 그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한 나의 낭만적이지 못한 행동에도 원망을 표했다.

사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어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저녁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부부로 함께 살아온 20년을 이미 자축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부터 하는 것은 모두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은 날씨 덕에 거의 포기했던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고, 원하던 대로 정상까지 올라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고, 아름다운 경치에 우리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공짜로 생음악까지 곁들였으니 좋았고, 만화 속 인물 같은 청년이 우리 둘의 멋진 인증 사진까지 찍어주고 사라져 주어서 완전한 금상첨화였다.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아담은 그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던 그 완벽한 순간을 빼앗긴 듯한 아쉬움에 죄 없는 청년을 몇 번 더 원망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빨리 내려가자며 다시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눈길에 두세 차례 넘어져가며 한동안 말없이 허겁지겁 비탈길을 앞서 내려가던 아담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내려오던 산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정상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를 수도 있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서둘렀지?” 그의 얼굴은 비참한 듯이 일그러져 있었다. 늘 그렇듯이 자신이 내린 결정과 현재 이 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후회를 하고 있는 그가 안쓰러워 다시 정상에 되돌아갈 수 있을지 보기 위해 나도 내려오던 산을 되돌아보았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바위산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올라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내려와 있었다.

Adam’s Travel Journal

It was during the descent that I became aware of just how distracted I was. I was not in the present at any point until now.

On the ascent, I was anxious to reach the summit, partly in anticipation of getting there with enough light to see the awesome views that I knew would certainly await us to reward the muscle strains. When we got to the top it was the distraction of a German rapper whose artistry I had not anticipated and was not compatible with the divine experience I had planned. I had slipped several times on the ascent, and mainly due to that ignominy I had not enjoyed the walk. Then I was anxious to return in enough time with the risk of the early setting winter sun catching us in darkness on in the descent over icy slopes and a change in weather catching us unprepared. But on the descent, almost immediately from when we had stepped down off the peak, possibly for the last time from this spectacular place, I wished I had stayed longer. To add insult to injury, I slipped a few more times.

We were passing a section of snow and in a childlike spontaneity I buried my hand in it to feel the coldness, and grabbed a fistful, making a ball. I did my wife the courtesy of asking if her jacket was waterproof. No, she did no want to be hit with a snow ball, but she asked for us to make a snow-man instead. That’s the nature of man and woman, I thought, destructor and creator, one needing the other.

We made a snow man. Dried mountain flowers for eyes, a pebble for a nose, a stick for a mouth, twigs for arms. It was the cutest thing! It was as if it were alive, and I felt some regret, pain even, at the thought of having to leave it alone up there in the bitter cold and darkness of the night. It was my wife again that suggested we make a companion, as if she had read my mind. Bless her. we made another. We took photos with them, lying down beside them in the snow. And in all that time we were there making these little snow things, nothing else in the world existed and nothing was more beautiful than those two little crooked, imperfect snow-children we made. My wife thought of them as me and her. I did not say, but I thought them our children. The first born of spontaneous passion, the second of meditated passion, and each of them of love. Each one for each other so that one might not be alone in the cold darkness once we are gone.

We continued on, descending back down the mountain. I was no longer worried about the time, or where I was going. I just enjoyed each step, and the great vista before us, wondering if the clouds would allow us to see amber painted snow caps in the sunset. And I wondered at times how those two snow kids were doing, and how I wished our daughters would join us.

2년 반 전에 아이들과 함께 왔을 때 가족사진을 찍었던 같은 장소인 해발 1326미터의 벤 르몽드 쎄들 (Ben Lemond Saddle)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