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클리프스, 대박의 꿈을 키우는 메마른  도박장

화이트 클리프스, 대박의 꿈을 키우는 메마른 도박장

2020-07-31 0 By Adam and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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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이브)는 화이트 클리프스(White Cliffs)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첫눈에 보이는 이곳은 너무나 삭막했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녹슨 기계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무엇보다 내가 기대했던 멋진 흰색의 절벽은 온데간데없었고 대신 평평한 허허 벌판에 작은 흙무더기만 멀리 몇 개 보일 뿐이었다.

불행히도 아담과 나는 화이트 클리프스에서 하룻밤을 묶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미 이곳에 숙소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고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서 빈 숙소를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이곳이 우리의 이번 아웃백 여행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속을 들여다보았기에…. (뭔 소리? 계속 읽으면 알게 됨)

화이트 클리프스 (White Cliffs)에 대하여

화이트 클리프스 (White Cliffs)는 타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덕을 파고 땅속에 들어가 사는 독특한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 주거 방식으로 유명한 곳으로서 호주 NSW 아웃백에 있는 첫 상업용 오팔 채굴장이기도 하다. 현제 인구는 100-200명 정도로 아주 작은 타운이다.

이곳에서 오팔 채굴이 시작된 것은 아주 단순한 우연에서였다. 1880년 대 어느 날 두 명의 목축업자가 들에 나가 캥거루 사냥을 하고 있던 중 말이 차서 깨진 돌 안에 밝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중에 이것은 전문가에 의해 비싼 오팔인 것으로 판정되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찾아 화이트 클리프스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곳의 인구가 한때 3000-5000명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 적도 있었다.

이곳의 여름철 기온은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광부들은 채굴로 형성된 지하 동굴 안이 지상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것을 알고 결국 그 안에서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의 집과 영업소들은 언덕에 굴을 파서 지은 것이 대부분이고 이런 곳을 보통 ‘더그아웃( dugout)’이라고 부른다. 더그아웃 안의 기온은 섭씨 16-26도로 사계절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더그아웃에서 사는 가장 좋은 점은 자기 땅의 경계선 안에서는 무제한으로 원하는 만큼 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성장하는 아이들 때문에 또는 노부모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방이 더 필요하다면 단순히 흙을 파내고 방을 더 만들면 된다. 융자, 건축 허가,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아니, 이렇게 쌈박할 수가!

화이트 클리프스 위지

화이트 클리프스는 아웃백 NSW의 극서 쪽에 위치해 있는데 최단거리 도로 여행 시 시드니에서 1050 km (11.5시간) 거리이다. 그런데 맬번에서부터 890 km (9.5 시간), 에들레이드에서부터 760 km (8.5 시간) 떨어져 있어 오히려 이웃 주도에 더 가깝다.

볼거리 / 할 거리

  • 오팔 갤러리 방문
  • 언더그라운드 오팔 광산 관광 / 더그아웃 집 관광
  • 오팔 채굴장 차로 돌아보며 오팔 찾기
  • 더그아웃 숙소에 하룻밤 묶어보기

관련된 모든 정보와 지도는 타운의 중심에 있는 잡화점/카페/레스토랑을 겸한 관광 정보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셀프 가이드 투어 지도를 가지고 운전을 하며 타운과, 오팔 채굴장, 오팔 갤러리 등을 무료로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언더그라운드 모텔, 더그아웃 집, 오팔 광산 투어는 예약이 필요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오팔 찾기(fossicking)와 관련하여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누구든지 허가 없이 오팔을 찾아 채굴장의 아무 곳이나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단지 다른 사람이 이미 찜해서 소유권을 등록해놓은 곳만 피하면 된다. 만약 운이 좋아 아름다운 오팔을 주웠다면 그것은 그냥 가져도 된다.

등록된 소유권은 보통 50 x 50 미터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각각의 꼭짓점에 말뚝을 세워 경계가 표시 되어 있다. 사진은 소유권자의 정보가 적혀있는 표지판.

숙소

  • 화이트 클리프스 언더그라운드 모텔 (White Cliffs Underground Motel)
  • 화이트 클리프스 호텔 (White Cliffs Hotel)

이 작은 타운에는 숙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화이트 클리프스 언더그라운드 모텔은 숙소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고 더그아웃 숙소에서 묶어보는 체험을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화이트 클리프스에 온다.

화이트 클리프스 언더그라운드 모텔

언더그라운드 모텔은 원래 소박한 가정집이었다. 한 아빠가 가족들을 위해 집을 하나 파기로 마음먹고 아들과 함께 땅 굴을 파기 시작했다. 건축 규정의 적용이나 허가가 필요 없으니 이들 부자는 방을 5개 팠고 나중에 바로 옆에 있는 방 3개짜리 아들 집과 연결을 시켜 총 방 8개짜리 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들 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2개의 방을 더 파서 총 30개의 방을 만들었다.

그 당시 이 타운의 유일한 상업용 숙소인 인근 화이트 클리프스 호텔이 손님들로 넘쳐나자 이 가족은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의 집에서 잠도 자고 함께 식사도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더그아웃 숙소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면서 결국 이 가정집은 1989년 공식적으로 모텔로 전환되었다.

언더그라운드 모텔의 실내 온도는 자연적으로 늘 일정한 섭씨 26도로 유지된다고 한다. 방은 깨끗하고 아늑하며 생각보다 훨씬 공간이 넓고 천정이 높아 패소공포증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방마다 약간씩 모양이 다르다.

환기를 위해서 각 방마다 땅 표면에서부터 천정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바퀴만 한 크기의 수갱이 뚫려있다. 약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방마다 문 위에 작은 환기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기 때문에 말을 하거나 밤에 소리를 낼 때 조심해야 된다는 것이다.

객실 내의 비품은 거의 수도원 수준이라 보면 된다. 요즘 모텔방에 기본적으로 구비되어 있는 TV, 냉장고, 커피포트, wi fi, 히터나 에어컨 등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큰 단점은 객실에 딸린 샤워장/화장실이 없다는 것. 투숙객들이 외부 수영장 옆에 있는 몇 개 안되는 공동 샤워장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처음에 우리는 언더그라운드 모텔에 방을 예약했다 막판에 취소를 하고 말았다. 공동 샤워장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COVID-19 시대에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냥 모텔 안팎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언더그라운드 모텔에 묶는 것은 분명히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고 화이트 클리프스 여행의 하이라이트 일 것이다. 단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화이트 클리프스 호텔

화이트 클리프스 호텔은 타운의 중앙에 있는 땅속이 아닌 지상에 있는 아주 기본적인 숙소이다. 호텔이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모든 객실에 개인 샤워장/화장실이 딸려있다는 장점이 있다.

왼쪽 사진은 사암으로 지어진 화이트 클리프스 호텔/펍의 건물. 숙소는 이 건물의 뒤편에 지어진 증축 건물에 있다. 오른쪽 사진은 숙소 중에서 한 개의 공동 부엌과 거실이 딸려있는 4개의 프리미엄 더블 룸 (Premium Double Room)이 있는 숙소 건물의 모습. 우리는 여기에 있는 방 하나에 묶었었는데 ‘고급’을 의미하는 ‘프리미엄’이라는 말은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텔의 카페/레스토랑에서는 커피와 알코올음료 그리고 점심과 저녁 식사를 사 먹을 수 있다. 이곳은 골동품점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구식의 야외 등유 히터에 불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요리까지 남자 한 명이 모든 일을 다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음식은 놀랄 만큼 맛있는 편이다.

아름다운 황혼이 깃들기 시작할 때 안뜰에서 먹는 음식이나 술맛은 고급 레스토랑과 감히 견줄만하다. (내가 그때 약간 알딸딸해서 이렇게 느꼈을 수도…)

아담과 이브의 개인적인 경험

우리는 화이트 클리프스에 도착하자마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이 비참한 곳을 떠나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었다.

볼만한 거, 할만한 거를 찾아 모두 한 이후에도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여전히 시간이 남아돌았다. 우리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특정한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운전하고 돌아다니다 결국 마을 공동묘지에 가게 되었다. ‘아니, 다른 곳 다 놔두고 웬 공동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듯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화이트 클리프스에서 살다가 죽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공동묘지에서 오팔 광부인 피터(Peter)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이곳에 서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피터는 우리를 자신의 더그아웃 집에 초대를 했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던 원래 계획을 바꿔 와인 한 병을 사들고 피터의 집에 방문했다.

피터는 오팔에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1974년에 처음 화이트 클리프스에 온 후 기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눌러 살고 있었다. 원래 스위스 출신인 그는 호주에 오기 전 한동안 아프리카에서 살기도 했었다. 아프리카에서 반 아프리카인 반 독일인인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피터 씨 부부는 더그아웃에서 세 명의 자녀를 길러냈고, 이제 아내와 성장한 아이들은 모두 대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집에는 피터 혼자만 살고 있었다.

피터는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마음은 젊었으며,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놀랍게도 그는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거리공연을 하는 버스커(busker)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클럽이나 뮤직 페스티벌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화이트 클리프스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페스티벌 때 버스킹을 한다고 했다.

피터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오팔 광부들은 두더지처럼 어두운 땅속에서 구멍을 파는 재미없고 비참한 족속들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피터는 이러한 내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바로 입증해 주었다.

우리가 더그아웃에 도착하는 순간 피터가 강박적 수집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집 구석구석이 쓰레기 처리장에서 주워온 각종 잡동사니들로 꽉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우리가 공동묘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혹시 쓸만한 것이 버려진 게 있는지 보기 위해 쓰레기 처리장에 갈 거라고 말했었다.

피터의 보물: 작은 그림이 그려져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오팔이 있는 돌. 피터는 이것을 쓰레기 처리장에서 주어왔다는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며 얼마를 주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포함해 아무에게도 절대 팔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한창 젊은 20대에 살았던 아프리카의 좋은 추억을 연상시켜주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피터는 외모로 봤을 때 70대 정도로 젊어 보이지만 아내의 나이가 88세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실제 나이는 80대나 심지어 90대 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보통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피터는 신기술에 능하고 현 유행도 잘 따라가고 있는 듯했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도 있고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가장 인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약 300 km는 족히 떨어져 있는 타운에서부터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이 화이트 클리프스로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 겨울에는 2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주문받은 물품을 배달해 준다고 한다. 이런 촌구석에서도 신기술이 제공하는 최고의 편의를 모두 누릴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마음이 젊어서인지 피터는 벌여놓은 일들을 서서히 정리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원대한 프로젝트며 앞으로의 꿈을 우리에게 몇 개 털어놓었다. 예를 들자면, 더그아웃 꼭대기에 계단과 위로 젖혀서 여는 창문이 달린 대형 전망대를 짓는 것과 현재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있는 2년 전에 새로 구매한 토지에 굴을 파내고 방을 더 만드는 것 등등..

피터와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아담과 나는 오팔을 주워보려고 전날 이미 가보았던 오팔 채굴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는 오팔을 찾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중독성마저 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었다. 거의 도박과 같았다. 약간이라도 푸른빛이 도는 작은 돌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 둘은 아주 신바람이 났고 좀 더 주워모으려고 더 열심히 찾아다녔다. 한 발짝만 더 뛰면 그래서 한 번만 더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보물을 발견하는 행운이 올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며….

그제서야 우리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에 와서 하루하루, 한 해 또 한 해를 넘기며 땅을 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곡괭이를 한 번만 더 내치면 이번에는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는 희망은 불가항력적인 유혹임이 틀림없었다.

이 관점에서 보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오팔 광부들은 미래에 대한 큰 야망과 포부를 갖고 있는 몽상가들이었다. 그들의 생각에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단지 운 만 조금 따라주면 될 뿐이었다.

화이트 클리프스는 겉만 보면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곳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달콤한 꿈과 원대한 포부를 담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오팔처럼 잘 들여다봐야지만 이것이 보인다.

누가 알겠는가? 피터도 어느 날 대박을 맞을지…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피터가 우리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왼쪽의 사진은 화석화된 나무 그리고 오른쪽은 아담과 나에게 준 작은 오팔 조각: 녹색은 이브에게 흰색은 아담에게.